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@의 세상 적응기/복용 기록

생각이 멈췄다.

by Haze. 2020. 12. 29.

머릿속을 뒤흔들던 생각이 조금은 잦아들었다. 생각이 생각을 낳고 그 생각이 다시 증식되는, 생각에 사로잡혀서 아무 일도 하지 못하는 상태는 적어도 아니라는 소리다.

 

그 생각은 늘, 현실적이지도 건설적이지도 않았지만 막연한 무의식 속의 불안감을 끊임 없이 자극했다. 아메바가 삽시간만에 번식하듯 늘어나 결국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없게 마비시켰다.

 

 

 

메디키넷 30짜리를 하루 2번 먹는다. 토요일, 일요일, 월요일, 총 3일을 먹어보았다.

입이 마르는 증상은 아직 있다. 그러나 지끈거리던 두통도, 메스꺼움도, 식욕부진도, 불면증도 모두 사라졌다. 

격무로 인해 자가면역질환이 불쑥 온 몸을 도사리던 때에 하필 독한 약을 먹어 더 난리가 났던 것 같다.

 

약효가 떨어질 때면 그간 내가 짊어지던 한계점이 뒷목을 쳤다. 모래주머니를 차고 다니다가 벗으면 홀가분해지고, 그 홀가분에 익숙해지면 모래주머니가 돌덩이처럼 느껴지는 기분이 딱 정확하다. 오래되어 초점이 맞지 않은 옛 안경을 버리고, 새롭게 제대로 맞춘 안경을 쓸 때의 그 새롭고, 밝고, 명확한 느낌. 메디키넷 용량을 증량했을 때 그 효과가 더 여실히 느껴졌다. 식욕부진이라는 부작용도 사라졌다. 식욕부진은 정말 마음에 드는 부작용이었는데...... 너무 잘 먹어서 큰일이다.

 

감정도 꽤 잘 절제가 되는 것 같긴 하다. 파도가 치긴 치는데, 이전에는 쓰나미가 몰려왔다면 지금은 너울 정도라고 해야 하나. 여전히 위험하지만, 조금은 방심할 수 있는 정도로 잦아들었다.

 

여전히 그 차장님과의 사이는 매우 좋지 않았다. 여전히 그 톡톡 쏘아붙이는 말투에 짜증이 났지만, 생각보다 그 여파가 오래 가지 않았다. 이 전 같았다면 일주일 내내 부들대며 분노를 삭힐테지만, 지나가다가 똥을 밟은 정도의 짜증 수준으로 그쳤다. 가령 이전 같았다면 "제발 네 자신이 똥인 걸 알아라.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!"를 반드시 상대방에게 전달하고 싶어 늘 화가 나 있었다면, 지금은 "똥" 하나로 어느 정도의 분노는 정리가 됐다. 더 짧은 키워드로 더 많은 감정을 절제할 수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, 그동안 지나치게 끓어오르는 화와 맞서 싸우는 내 과거의 모습이 더 이상 멍청하게만은 보이지 않았다. - 이렇게 쉽게 자제가 되는데, 그동안 참 많이 애썼구나.

 

생각이 멈췄다.

무의식 속의 불안감을 이제는 '덜' 건드리고 있다. 아직은 완벽하게 통제되는 것 같지는 않다. 아니, 완벽히 통제가 될 리가 없지. 사람인데.

 

이러한 티끌 같은 변화가 (나에게는 태산 같지만) 조금씩 쌓여서, 나의 삶을 조금 더 긍정적으로 바꿔주기를 바란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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